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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의 사생활/- 독서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 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 윌리엄 포크너 , 민음사

책 소개&줄거리

미국 남부.
한 가정의 엄마가 죽었다.
생전에 했던 재퍼슨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르기 위해
남편과 5명의 자식들은 여정을 떠난다. 이 책은 한 화자의 서술이 아닌 여러 화자의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엄마 애디의 죽음에 대한 각자의 관점이 누군가는 애정어린 슬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 엄마의 죽음보다 연장과 도구를 걱정하는 마음들이 담겨있다. 이 책의 제목이 “그녀 혹은 엄마가” 죽어 누워있을 때가 아닌,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라서 그런지
애디가 죽어서 남은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이 느껴진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의 무너진 남부의 삶을 실감할 수도 있다.
그 40마일을 이동하는 여정에
애지중지하던 무언가를 잃고,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잡혀가는 등
마차를 끌며 다사다난한 일들을 겪으며 북부에 도착했는데,
그 곳엔 자동차와 기차가 만연하다.
현대의 사람들이 읽기에 이렇게 허무맹랑한 일이 있을까 싶지만,
아마 우리 세대로 비유하자면
큰 병을 수술할 병원비가 없어서 누군가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처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북부와 남부의 빈부격차 뿐만 아니라
가난한 남부가 북부 출신에게 가진 비루한 열등감과 분노도 보이며,
시비가 붙었다고 바로 칼을 꺼내들거나
북부 생활에 무지한 남부 처자를 꼬득여 성폭행하는 냉혈한 북부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읽고 난 후..

재미없었다.
질질 끌다보니, 3월 말에 시작한 책이 5월 초에 끝났다.
문외한인 내가 무슨 평가를 하겠냐만은
그냥 나한테는 재미가 없었다.
나에겐 어떤 생각할 거리도, 메시지도 전달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3번을 읽고 인생의 최고작으로 뽑는다는데
나는 흐름이 난해했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연인이 강을 건너려는데, 못건너서 벌어지는
“이 중에서 잘못했는지” 물어보는 심리테스트가 있다. 내게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는 딱 그꼴이다.
이 중 가장 잘못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캐시는 엄마가 죽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보는데서 관을 짠다.
달은 엄마의 시신이 있는 남의 헛간에 불을 지른다.
주얼은 살아 생전 가족이 다 같이 일할 때, 거의 노동력을 제공하지도 않고 마이웨이로 혼자 일해서 말을 산다.
듀이 델은 책임지지도 못할 아이를 임신하고 중절하기 위해 돌아다닌다.
북부의 맥고우원은 중절 약을 찾는 듀이 델을 속여 성적으로 범한다.
아빠 앤스는 이상한 고집을 부려서 여행길을 더 험난하게 만들고,
동의 없이 주얼의 말도 팔아치우고, 딸의 중절 수술비도 가로채 그걸로 틀니 같은 걸 한다.
그리고 바로 새여자를 얻었다.
그리고 엄마 애디는 무언가에 복수하기 위해 재퍼슨에 묻어달라고 해서 남은 이들을 고생길에 던지고,
혼외자식으로 주얼을 낳아 기른다.

말이란 전혀 쓸모 없다는 사실도 그때 깨닫게 되었다.
말하려고 하는 내용과 내뱉어진 말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p.198


보복하기로 했다. 내가 보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숨기는 것이 바로 보복이었다.
달이 태어났을 때, 내가 죽으면 재퍼슨에 묻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했다
P.199


객관적으로 잘못한 사람은 달, 애디와 맥고우원이지 않을까 싶다.
달은 개인적 사유로 인해 남의 재산을 침해했고,
엄마 애디는 간통죄. 맥고우원은 성범죄자다.


그런데도 나를 가장 분노하게 만들었던 건 앤스였다.
일단 앤스는 딸의 돈을 가로챈 것도 그것은 어디에 쓸 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하고
아내가 죽은 뒤, 새 아내를 얻은 것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쓸데 없이 강 건너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캐시 다치고 노새 잃고하는 장면에서 1차 빡침.
관을 이동할 노새를 구하기 위해 주얼이 애지중지하는 말까지 동의없이 가로챌 때는 진짜 극대노..

유달리 앤스 행동에 화가났던 것은
심리테스트와 같이 내가 중요시하는 어떤 것과 충돌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를 생각해본다.
썩어가는 시체, 고생하는 자식들, 모독과 잊혀짐은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다.
죽음 뒤엔 아무것도 없을테니까

사후 생이 있다면, 그건 결국 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사후 생이란 없을 것 같다.

이미 죽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텐데,
남아있는 나의 육신이 부패가 되던, 남겨진 자식들이 고생을 하던, 모독을 하던…
내가 알 길이 있을까?

죽음의 의미는 떠나갈, 그리고 떠나간 이들에게
남겨진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일 뿐
자신의 떠남은 의미가 없다.
이러한 생각들 때문인지,
이 책에 아무 감흥도 없었던 것 같다.

P. 95
낯선 방에서 잠을 청하려면 네 자신을 모두 비워야 한다.
잠을 자기 위해 자신을 비우기 전엔 넌 네 자신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자신을 비우면 그때는 더이상 너가 아니다.
완전히 잠들어 버리면 넌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된다.
내가 존재하는지 안하는지도 모른다.


p.130
정말 게으르고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야말로 일단 출발하면 계속 움직여야 하는 모양이다. 움직이지 않고 머무르는 일도 물론 마찬가지다.
마치 그가 싫어하는 것이 움직임 자첵라기보다는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는 일인 것처럼.
무엇이든 움직여야 하는 일이 생기면 이를 자랑스러워 하고,
머무르는 일이 오히려 힘든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