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유난히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며, 누군가가 옆에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외로움은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가?
라르스 스벤젠은 외로움을 정서적 측면과 인지적 측면으로 나뉜다고 했다. 정서와 인지는 서로 영향이 있기 때문에 깔끔하게 나뉘지는 않지만, 전자는 타자와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다는 '결핍' 때문이며 후자는 자신이 바라는 연결과 실제 연결에서 인지되는 '불일치'에 비중을 두게 되면 오는 것으로 설명했다.
외로움은 완전히 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외로움은 타자와의 연결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타자와는 분리되어있다. 나와 타자는 같은 사회에 있고 보이지 않는 이음매를 느낀다고 해도 결국 '나는 나', '타자는 타자'이며 '죽음'조차 대신해줄 수 없는 인간이다. 인간에게 죄수에게 독방이 가장 강도 높은 형별이 될 정도로 타인 없이 생활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외로움은 필연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해결할 수 없는 것일까?
작가는 결핍에서 야기되는 외로움은 감정과 비슷한 속성이며 감정에 따른 행동은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감정은 생각과 판단에 의해서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백인이 흑인이 만든 케이크라는 사실을 알고도 잘 먹는 백인이 있는 반면, 혐오에 의해 구역감을 못 참고 토악질을 하는 백인이 있는데, 이는 감정이 생각과 판단에서 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외로움은 감정에서 오기 때문에 판단과 생각을 달리하면 결핍적인 감정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혼자 있음'을 '고독'으로 얘기하려고 한다.
외로움의 근간에는 결핍이 있지만, 고독은 다양한 경험, 생각, 감정에 제한 없이 열려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p.162
혼자있음이라는 의미는 고독은 명상이나 성품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고독이 한 점도 깃들지 않은 사생활은 심히 외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
p.181
아렌트에 따르면 모든 고독의 특징은 내가 나 자신과 함께 있다는 사실, 즉, 내가 "하나 속의 둘"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고독이 외로움으로 변할 수도 있는데 아렌트가 생각하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내가 나를 "하나 속의 둘"로 쪼개지 못했기 때문에 나 자신과 교제하지 못하고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고나 할까
p.190
책을 읽고
외로움이 느껴져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내가 평소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인가 돌이켜봤을 땐 그런 것 같진 않다고 생각했다. 되려 고독과 사색을 즐기는 편이었다. 그러던 내가 30대가 넘어가면서부터 극한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헸는데 연인에 대한 외로움이었지 친구/가족에 대한 외로움은 아니었다.
시작할 때부터 과보를 예상하고도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두 번의 실수를 반복했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고통 을 겪을 때는 "그러지 말 걸. 알고 있었는데, 만나지 말 걸."이라는 생각을 수차례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내 꼬라지를 보시고 한 번에 깨치지 못하니 '좀 깨쳐라!'하고 같은 벌을 내리신 건 아닌가 싶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 성찰을 한다고 했던가. 왜 나는 외로움을 느끼는가에 대한 고찰을 시작했고 이 책을 통해 내가 유난히 연인과의 관계에서 '애착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불신감이 있고, 지나치게 비판적이며, 자신에게 몰두'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다음번엔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나의 생각과 판단을 달리하고, 감정을 조절하려는 노력을 하라고 벌어진 일인 것 같다. 인정한다고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닌 것을 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안 할 수는 없으니, 안돼도 또 하고, 또 안돼도 또 해보려 한다.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원했던 나의 모습으로 바뀌니까. 나는 그걸 알고 있으니까.
훗날의 외로움을 겪고 있을 나를 위해서, 마지막 인용구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서 사랑받으면 자기가 그 사람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 것처럼 '온전해진' 기분이 든다. 모든 이에게 사랑으로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 사람은 존재하며 다른 모든 감정을 뛰어넘어 그때까지 알았던 모든 것을 초월하는 소속감을 불어넣는다.
타자가 나를 '온전케'하고 나와 이음매조차 없는 일체를 이루어주리라는 기대를 품은 자는 그 기대를 이룰 가망이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타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밖에 없다. 타자는 늘 분리를 유지할 것이요, 언제까지나 '타자'일 것이다. 내 사람이 필수불가결한 의미를 지니느냐 그렇지 않는냐는 타자의 책임이 아니다.
p.120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전부여야 한다는, 두 사람이 이음매조차 눈에 띄지 않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이 기대가 사랑을 불가능하게 한다. 타인에겐 나를 만나기 이전의 삶이 있었다. 타인이 과거의 삶의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내 삶에 섞여 들어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에게는 내가 절대로 완전히 참여할 수 없는 그 사람만의 생각과 감정이 있다. 이건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실들이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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