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으로 총알이 들어올까봐 이불을 쓰고 총소리를 듣는데, 아이들이 있었던 게 자꾸 생각나서 가슴이 떨렸습니다. 우리 아들만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들도 봤고, 산달인지 배가 불러 허리를 짚고 서 있는 여자도 있었어요. 어둑어둑해지는데 총소리가 멈춰서 문구멍으로 내다봤더니, 피투성이로 모래밭에 엎어져 있는 사람들을 군인들이 바다에 던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옷가지들이 바다에 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 죽은 사람들이었어요. 다음날 새벽에 내가 우리 아기를 업고 아기 아빠 몰래 바닷가로 갔습니다. 떠밀려 온 젖먹이가 꼭 있을 것 같아서 샅샅이 찾았는데 안보였어요.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옷가지 한 장 신발 한 짝도 없었어요. 총살했던 자리는 밤사이 썰물에 쓸려가서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짧은 소개도 보지 않고 책부터 집어드는 습관 때문인지.
그래서 어떤 내용인지도 몰라서 그랬는지.
초반부터 시작하는 미로 같은 말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고, 글의 분위기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을 보았다는 말도, 여러 연령대의 사람과 같다는 말도,
묘지가 여기 있었나, 하는 말도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하는 말도,
뒤를 돌아보니 물이 들어 차고 있었다는 말도,
그 글들을 이해한 것은
소설을 덮은 뒤, 한강의 북 트레일러를 다시 보게 되면서다.
이 책은 제주 4.3 학살을 담고 있다.
역사에 무지한 내가, 책을 통해 그 시대에 사는 사람이 되어보면서 경하처럼, 혹은 인선처럼 고통을 체험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너무 잔혹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겁다.
[낭독] 한강 작가 목소리로 직접 듣는 신작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 북트레일러 - YouTube
이미 죽어버린 억울한 영혼들은 어떻게 달랠 수 있는가?
이런 글/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이미 죽어버린 억울한 영혼들에 대해 생각한다.
일은 벌어졌고, 사람들은 이미 죽었고, 끔찍한 고통을 겪은 피해자는 그대로인데,
일제의 가혹함을 겪은 것도 모자라 한 국가의 두 이념의 가혹함 때문에
죽어버린 그 영혼들은 무슨 수로 달랠 수 있나.
정의를 지키지 않는 이들은 잘만 살다 갔을텐데..
그 억울함은 대체 누가 달래주나..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잔혹한 현실에 씁쓸하고 아픈 마음이 드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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