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20대 청년이 서울을 떠나 꽃게잡이 배, 돼지농장, 오이농장, 자동차 부품 공장 등 흔히 3D라 일컫어지는 직종을 체험하며 써내려간 이야기다.
체험이라는 표현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근무기간이나 인터넷 정보들로 접한 정보들을 통해 유추되는 작가의 배경 그리고 나이를 따졌을 때,
형편이 굳이 그 직종으로 살아보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소설적 요소를 가미했는데, 이는 체험이라는 성질을 순화시키고 철저히 그들의 입장에서 얘기하고자 한 시도로 보인다
한 명의 지성인이 그 세계를 접하면서 예리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로 우리가 겪고 있는 노동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하였다.
읽고 난 뒤,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은 어떠한가?’‘나는 공정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는가?’
‘이 사회가 3D 직종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는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가?’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누군가는 시위 현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될 수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매일같이 돼지 똥을 뒤집어쓰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달 마스크 세 개를 지급하면서도 수완 좋은 경영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나는 어째서 이들이 회장님, 사장님, 부장님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실제로 장님이었다.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며 먹고 사는지만 고집스럽게 보지 못하는 선택적 시각장애인. 나는 지금도 그 결정이 호의였는지 조롱이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왜 워킹푸어의 삶이 척박할 수밖에 없는가?
회사는 봉사 집단이 아닌 이익 집단이다. 이익을 내기 위해 회사가 존재하므로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고, 생산성을 최대로 이끄는 효율성을 따지게 된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어떤 정신이 인간이 노동을하며 필요한 비품들이나 인건비를 불필요한 지출에 포함시키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사장들은 월세보다 인건비를 가장 아까워하고, 그래서 한 사람이 2~3인 분을 할 것을 요구하고,
2~3인 분을 해내는 사람에겐 그게 당연하다는 인식으로 압박을 넣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일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고 심하면 퇴출도 시킨다.
# 결국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인건비를 줄이는 것. 나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의 근원이 이런 모습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사람에게 들어가는 돈을 줄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 말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깨어있는 몇사람이 해결할 수 없도록 만드는 현실도 이 상황을 악화시킨다.
부당함을 외치면 ‘싫으면 나가, 너 아니라도 일 할 사람 많아’라는 반응
파견직으로 고용되었기에 노조를 만들 수도 없는 현실
‘원래 남의 돈 벌어먹고 살기 힘들어, 세상은 다 이런거야.’
‘어렸을 때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렇지’라는 인식 등.
이러한 사상들이 우리 사회가 불공평에서 공평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었고,
나아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도록 막고있다.
한 두 사람의 인식이 아닌, 문화가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들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열심히 일해봤자 금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을 쫓아갈 수 없고,
운도 이제는 실력이라고 일컫어 지는 삶에 성실과 정직의 가치는 떨어져버렸다.
정말 작가의 말대로 희망을 생각할 수 없는 사회다.
# 왜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하고 보수도 적은 일을 참고 버티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걸까? 누군가 그런 일을 그만둔다면 그런 그들이 참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하고 이성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 어른을 공경하라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55세 이상의 모든 성인 남자에게는 지하철 좌석을 양보할 게 아니라
벌금을 물려야 마땅하다. “어째서 세상을 이렇게밖에 만들지 못했소? 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의 남자들은 어린 세대의 존경이라는 열차에 무임승차를 해왔는데 이제는 그들도 대가를 치를 때가 됐다. 당연한 권리 행사라도 하듯 식구를 때리고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주고 후임병을 군홧발로 걷어찬 대가를. 피부 빛이 검다는 이유로 상대를 무시한 대가를. 직원들에게 줘야 할 돈으로 새 아파트를 사고 자식들을 유학 보낸 대가를. 한 달에 이틀 휴일을 ‘허락’해주고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믿은 대가를. 일 끝나고 돌아온 아내가 청소를 하고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는 동안 소파에 드러누워 스포츠 채널이나 뒤적이는 대가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했을 때 부끄러워하지 않은 대가를. 자기의 잘난 애새끼들이 아빠 흉내를 내기 시작했을 때 바로 잡지 않은 대가를.
# 세상이 이따위인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누구도 우리를 쓸모없는 놈들이라며 손가락질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의지의 결핍이 아니라 희망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삶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말이다.
이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가?
한 개인으로서 이러한 사회가 진절머리 난다고 한들,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권력을 양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만이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을 양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 구조상 특혜를 받고 있고,
그것을 어느정도 내려놔야할텐데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더 쥐고싶지 이익을 내려놓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나쁘다고 욕만 할 수도 없는게, 그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집 있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에 집 없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내 집 한 채 없이 월세며 전세며 전전긍긍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자신이 몸 뉘어 쉴 수 있는 집 한 채 쯤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는 말에 끄덕일 사람들도
“그렇기 때문에 집 없는 사람들이 집을 살 수 있도록 집 값을 내리겠습니다”하면 노발대발 할 것이고,
어떠한 정책이 자신의 집 값 떨어지는데 영향을 끼친다면 다른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는 정책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 본다.
이러하듯 권력자는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생기는데,
이 구조를 바꾸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본다.
이 상황을 타파하려면 부당함을 직접 당하는자들이 권력을 쥐어야 하는데 나는 그것을 ‘투표’로 보고 있다.
투표로 힘을 가지려면 직접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내가 지금 받는 게 부당한 대우구나!’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고,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 사회에 이런 고통이 있었네?’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앎에 있어서 이 책이 어느정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읽어보라 권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들의 고통을 이해함으로써
지난 주에 이 책 내용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에서
책을 안읽고 온 사람에게 들었던 “육체노동직만 힘들어요? 사무직도 힘들어요!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라는 소리 중,
‘육체노동자만 힘들어요?’라는 소리가 철없고 무례한 소리가 될 수도 있구나, 라는 개념은 챙길 수 있게 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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