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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의 사생활/- 독서

자유란 무엇인가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챠키스

21년 말과 22년 초를 함께 보낸 책, 그리스인 조르바.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예민한 것에만 반응한다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면서 '자유'를 떠올렸다기보단,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 같은 조르바에 눈살을 찌푸리기 바빴던 것 같다.

이 책에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유튜브를 찾아보았는데, 동영상을 보고 나서야 ‘자유’라는 키워드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이 책의 키워드는 왜 자유일까?

이 책의 중심인물은 화자인 ‘나’와 ‘조르바’ 두 사람이며, 둘의 성격과 특징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나’는 책과 글을 좋아하며 학식을 갖추고 있는 젊은이다. 조국에 대한 열정도 있고, 붓다의 말을 되새기며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반면, ‘조르바’는 술, 담배를 즐기며 여자에 환장하고 인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겉 보기에 ‘나’라는 인물은 교양을 갖춘 것 같고, ‘조르바’는 단순하고 무식해 보인다. 그러나 붓다가 말한 자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나’가 아닌 ‘조르바’다.

붓다가 말한 자유로운 삶은 괴로움과 얽매임 없는 삶이다. 머릿속에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과거의 영상을 틀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고,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를 상상하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적으로)지금 (공간적으로)여기에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조르바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지 얽매여 있진 않는다. 여자를 좋아하지만 한 여자에 정착하지 않는다. 담배를 끊고자 하면 끊을 수 있고, 술도 끊고자 하면 끊을 수 있지만, 지금 좋아해서 마시고 필 뿐이지 끊으려고 발버둥 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가 무언가에 집착하게 될 때면, 그는 그것을 끊어낸다. 어릴 땐 버찌씨를 너무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자 질릴 때까지 먹음으로 집착에서 벗어난 적이 있다고 한다.

반면 ‘나’는 고상해 보이지만 속은 인내로 괴로워한다. 과부에게 끌리지만 안지 않고 참아낸다. 하지만 무엇을 보더라도 여자의 육체와 비유하며 떠올리며 머릿속은 여자에 얽매여있다.

p.282
내가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쳐넣어 다시는 그놈의 생각이 안나도록 해버려요.
(…) 나는 지금도 마시고 피우지만 끊고 싶으면 언제든지 끊어 버리비다. 나는 내 정렬에 휘둘리지도 않습니다. 조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한때 그걸 너무 좋아하다 그것도 목젖까지 퍼 넣고 토해 버렸지요. 그때부터 그것 때문에 괴로울 일이 없어요.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 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자네는 뭐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자네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하게.


p.313
왜 안쓰느냐, 이유는 간단해요. 나는 당신의 소위 그 <신비>를 살아버리느라고 쓸 시간을 못냈지요. 때로는 전쟁, 때로는 계집, 때론는 술, 때로는 산투르를 살아 버렸어요. 그러니 내게 펜대 운전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러니 이런 일들이 펜대 운전사들에게 떨어진 거지요.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 몰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 독서 후기

작년 말부터 1월 중순까지 이 책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다.
조르바의 말과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고, 다 늙어서까지 이 여자 저 여자를 자유롭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꼴 보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조르바 같은 여성 편력이 이 사회에서 인정 받으려면, 그… 무슨 집단 있었는데.. 각자 다수의 여자친구가 있고 남자친구가 있는… 하여튼 그런 집단이 되어야 한다. 만약 그런 사회가 된다면 새 생명 문제와 결부되어 새로운 이슈를 가져올 것이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잠들어 있는 줄 아는 수도승의 털을 깎다가 죽어 있었음을 알자마자, 수도원에 가서 신의 계략처럼 장난질했는데, 그 모습도 타인을 속인 이기적인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베이스엔 이기가 깔려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스스로 괴롭지 않은 것은 부럽다. 그러나 그의 자유는 내 삶에 적용할 수 없다.
욕구대로 행동했다가 따라오는 결과들이 더 큰 불행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의 결과를 감당할 수 없다면, 붓다의 말처럼, 다만, 욕구를 억누르지도 않고 참지도 않고 다만, 인정하려 할 뿐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괴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성질들 때문에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수행이라고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