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카테고리에 마지막 글을 남긴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꾸준히 글을 쓰자고 다짐하며 열었던 블로그인데, 그동안 포스트를 올리지 못했던 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안 읽히기도 했고, 공감 가지 않아서 애먹었기 때문이다. 어떤 눈으로 이 책을 봐야 하는지 모르니 줄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어떻게 남겨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무엇부터 안 맞는 건지 초반부터 이 책은 나와 계속 삐그덕 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번 독서노트는 건너 뛰어볼 까 생각도 했지만, 이 공감가지 않는 책에 대해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언젠가 다시 읽을지 말지도 모르는 '훗날의 나'를 위해서다. 아마 이 글도 미래의 그 친구가 수정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면서 말이다..
소개글
도리언 그레이는 용모가 아름다운 미남자이다. 당대에 '완전'은 아니지만 나름 유명했던 화가 바질 홀워드가 그의 얼굴을 보고 새로운 학파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을 정도다. 게다가 죽은 모친으로부터 평생 놀고먹을 유산까지 물려받았으니, 그는 영앤리치앤핸섬을 두루두루 갖춘 남자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그의 한 가지 결점은 개성없는 무지상태의 영혼이었다. 얼마나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한 백지상태였는지, 무한도전 하하가 매번 말하던 ‘나는 잘생겼는데, 근데 잘생긴 걸 몰라야 해.’의 표본이 될 정도다.
헨리 위튼 경은 자신의 사상을 도리언에게 주입한다. 자신의 말뿐인 사상이 이 젊은이는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 거다. 그는 도리언에게 말한다. 너는 잘생겼지만 그 아름다움은 찰나의 순간같이 지나갈 것이라고. 헨리 경이 그 것을 대략 두 페이지에 걸쳐 말하니까, 도리언이 감화되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바질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차라리 초상화가 늙고, 자신의 아름다움이 유지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바칠 수 있다'며 절망에 빠져 탄식을 해댄다.
그리고 그 되도않는 도리언의 소원은 이루어진다.
줄거리와 스포
영혼 파괴의 시작. 시빌 베인의 죽음.
도리언은 허름한 극장의 아름다운 여배우 시빌 베인의 연기를 보고 반한다. 그리고 매일같이 극장에 눈도장을 찍어가며 그녀의 환심을 사고 사랑에 빠져 약혼을 한다. 도리언은 자신의 사랑을 헨리 경에게 자랑하며 극장에 데려가 그녀의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일생 처음 사랑이란 감정에 사로잡힌 그녀가 선 보였던 건 '단 하루의 발연기'였다. 헨리 경이 끝까지 보지 않고 극장을 빠져나가자 도리언은 그녀에게 자신을 망신시켰다며 극대노 하고 단칼에 차 버린다. 이러한 이별도 우스운데, 점입가경이 었던 것은 충격을 받은 시빌 베인이 약을 먹고 자살까지 한다는 것이다.
헨리 경은 이 소식을 도리언에게 전해주고, 도리언이 죄책감에 빠져들려 하자 말한다. 그녀의 죽음을 '비극에 나오는 멋진 장면'과 같은 낭만적 비극일 뿐이라고.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당일 8시 30분. 도리언은 오페라 극장에 가 자신의 남은 유희를 즐긴다.
바질이 위로하러 갔다가, 오페라 극장에 다녀왔다는 그를 비난한다. 도리언은 말한다.
"바질. 여기에 저를 위로하러 오신 거잖아요. 아름다운 마음씨죠. 그런데 이미 위안을 받은 저를 보고는 화를 내고 있어요. (...) 진정으로 저를 위로하고 싶으시다면 지난 일을 잊도록, 아니면 예술 본연이 관점에서 보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썩은 시체처럼 변해가는 초상화. 그러나, 지속되는 도리언의 아름다움.
시빌 베인 사건 이 후 초상화는 점점 변하기 시작한다. 그는 사람이 드나드는 방에 그 초상화를 둘 수 없었는지 먼지투성이인 공부방에 처박아 버린다. 그리고 영혼을 몰락시키고 탐욕을 키워간다. 점점 추해지는 초상화를 보면서 때때로 자신과 상반된 초상화에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캔버스에 그려진 얼굴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는 영원히 안전할 것이니, 그것으로 만사형통 아니겠는가.
사실, 그가 무슨 짓으로 타락했는지 자세하게 나와있진 않다. 소설 11장에서 평판이 좋지 않은 선착장에 가명으로 드나들고, 초상화를 망각하기 위해 보석을 수집하거나 자수품을 수집하면서 죄로 인해 파생되는 감정을 느끼는 얘기가 나온다. 이 부분이 가장 이해가지 않았던 부분인데, 대체 보석을 수집하거나 자수품을 수집하는 걸 보면서, 당최 어디서 죄를 느끼고, 퇴폐미를 느껴야 하는 걸까?
다만, 유추하기를 11장 마지막 부분에 헨리 경이 선물한 책 한 권에 중독되어 단순히 악을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양식으로 간주했다는 문구와 갑자기 도리언이 38살이 되어버린 12장 초반부에서 바질이 도리언을 추궁하는 장면을 통해 어떤식으로 타락했는지 짐작할 뿐이다.
"순수한 마음을 지닌 아가씨들이 자네를 알게 해서는 아 되며 정숙한 부인들도 자네와 같은 방에 앉아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 왜 자네와 우정을 나누는 젊은이들마다 모조리 그렇게 비참하게 파멸하는 거지?"
양심의 파괴와 아름다움의 끝.
바질의 기나긴 추궁에 도리언은 자신의 영혼을 보여주겠다며, 초상화가 있는 방에 데려간다. 바질은 처음에 누군가 훼손한 것 혹은 모방작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자신의 그림임을 알아보고 초상화가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도리언을 향해 아직 늦지 않았으니 기도하자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쉬잇! 그런 말 하지 말게. 자넨 충분히 악한 짓 많이 한 거야. 오, 저런! 자네. 저 저주받은 것이 우리를 비웃고 있는 게 보이나?"
자신의 영혼과 다름없는 초상화를 대놓고 눈치 없게 '저주받은 것'이라고 표현했으니, 도리언이 약이 바짝 올랐던 것 같다. 도리언은 바질 홀워드에게 증오심과 혐오감을 느끼고 칼로 찔러 죽인다. 그는 죽은 사람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그 방을 나온다. 그리고 한 때는 친했지만 지금은 자신을 기피하는 과학자 앨런을 초대하고 협박하여 시체 처리를 시킨다. 그리고 도리언이 외출을 하고 돌아왔을 때, 질산 냄새가 가득한 그 방엔 바질의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뒤 도리언은 시빌 베인의 동생 제임스 베인에 의해 살해될 뻔했지만, 우연에 의해 그가 죽고 도리언은 살았다. 그 사건을 계기로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선행' 하나를 해놓고, 영혼의 아름다움이 돌아왔기를 바랐다. 하지만 초상화는 더 추악하게 변했을 뿐, 아름다운 건 여전히 자신의 육체뿐이다.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영혼의 역겨운 모습을 볼 때마다 도리언에겐 죄책감이 상기되었다. 초상화가 있는 한 평생 죄책감이라는 과거의 짐이 자신을 쫓아다닐 것을 직감한다.
초상화를 기억할 때마다 많은 즐거운 순간이 엉망이 되곤 했다. 초상화가 그에게 는 양심과 같은 것이었다. 맞다. 그것이 그의 양심이었다. 그는 그 양심을 파괴할 것이다.
주위를 둘러 본 그는 바질 홀워드를 살해했던 칼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초상화를 향해 찔러 넣는다.
비명 소리가 들린 도리언의 집. 아름다운 초상화 옆에 추한 남자의 시체가 늘어져 있을 뿐이다.
자신의 혐오스러운 이면을 들여다본 다는 것
책을 덮고,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름다움을 육체를 거머쥔 그는 어떤 마음으로 초상화에 얽매여있던 걸까.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봐도. 빈 A4 용지에 글자를 끄덕여봐도 도리언의 모든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공감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상상한 유일한 것은 잘생겼다고 하니까 도리언 그레이 외모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리즈시절 같겠거니 하고 떠올린 게 다이다.
그러다 어느날 내 일기장을 뒤적이다 '혐오감'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게 되면서 그가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초상화를 감추려 했었는지 이해 가기 시작했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존엄성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나 보기도 한가 보다.
사랑받고 싶어서 애써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채는 순간,
가장 먼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혐오감이기 때문이다.
도리언이 감추었던 것은 '영혼'이었다.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이자 추한 모습이었다. 내가 사랑받고 싶다는 약한 마음을 감추고 싶었던 것처럼. 그도 먼지 날리는 방에 차단막으로 감추고 외면했다. 도리언의 아름다운 육신으로 자신의 영혼을 감춘 것처럼, 나도 약한 모습을 애써 덧대고 칠해서 감추었다. 어쩌다 한 번씩 정면으로 내 모습을 마주하고 치미는 혐오감에 끝내는 전력을 다해 도망갔다면, 도리언 그레이는 그런 취약함을 그림의 형태로, 육안으로 마주하다가 끝내는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가 비극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면은 어떻게 들여다봤어야 했을까? 음.. 잘 모르겠다. 지금으로선 그저 인정해서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다독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전부다. 그런데 과연 추한 자신의 초상화를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까. 인정하고 연민을 느낀다 해서 마주할 때마다 드는 혐오감이 저절로 사그라들까. 아, 무언가 명쾌하지 않은 답변이다. 지금의 나는 이 문제의 답을 모르겠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 큼지막한 물음표가 있다.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그 질문을 미루려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답변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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