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 싯다르타
고타마 싯다르타. 부처의 이름을 빌려 쓴 책. 빌린 이름처럼 부처의 가르침이 잔뜩 묻어있다.
민음사편 싯다르타의 뒤편에 [헤르만 헤세가 일 년 반 동안 창작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정신 치료를 받은 후 발표한 작품]이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그 말 때문인지 헤세의 우울한 상태에 놓여있을 때, 떠올렸던 생각들과 부처를 통해 이겨내가는 과정들을 기록한 자서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줄거리 (↓더보기 클릭)
자아에 대한 의문. 그리고 답을 찾기 위한 여행길에 오른 싯다르타.
싯다르타는 인도 카스트 제도의 상위층인 바라문(브라만) 계급의 자제로 태어나,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부유한 환경과 달리 그의 마음은 고뇌에 차 있었는데, 그것은 세상, 자아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고 어디에서도 답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사문들이 싯다르타가 살고 있는 도시를 지나간다. 그들에게 자기 초탈의 무언가를 보고 그는 사문들을 따라가기로 결심하게 된다. 싯다르타의 아버지는 반대하였으나, 동이 틀 때까지 방에 서서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는 아들을 보내주게 된다. 그 길에 친구 고빈다도 합류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세속으로 들어가다
사문생활 3년이 지났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여전히 갈증을 느낀다. 여전히 자아의 의미와 본질을 알 수 없었고, 자아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느 날, 세존, 부처라는 고타마라고 불리는 인물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사문들을 떠나 그의 설법을 들으러 간다. 설법을 들은 뒤, 고빈다는 그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제자로 남는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깨달음은 가르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세속으로 들어간다.
속세에 물들어가는 싯다르타
강을 건넌 싯다르타는 도시 입구에서 네 사람이 메고 가는 가마 위의 아름다운 여인인 카말라를 본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 스승으로 삼고자하며, 사랑을 알려 달라고 한다. 기생인 그녀는 그 말에 웃으며 당신이 무슨 일을 할 줄 아느냐는 질문을 한다.
“나는 사색할 줄을 아오. 나는 기다릴 줄을 아오. 나는 단식할 줄을 아오”
카말라는 자신의 친구가 되고자 한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부유한 상인인 카마스와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그녀의 말을 따른다.
싯다르타는 카마스와미의 곁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그리고 카말라에게서 쾌락적인 사랑을 배운다. 싯다르타는 세속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구도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세상이란 덫에 걸려 나태함에 물들어간다.
그는 불안감이 주는 자극을 점점 높이려고 한다. 지겨울 정도로 물려버린 미지근하고 맥 빠진 자신의 삶에서 그러한 감정 속에라도 빠져야만 그나마 자신이 행복 같은 어떤 것, 도취 같은 어떤 것, 고양된 삶 같은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속세의 새장에서 나와 뱃사공 바주데바와의 생활
어느 날, 싯다르타는 카말라의 새장에 있던 새가 죽어있는 꿈을 꾼다. 그리고 고통스러움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그는 유원지 별장에 가서 망고나무 아래 정좌를 하였다. 그리고 떠나라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강가에서 그는 안식을 얻기를, 죽기를 바라는 자신의 지경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한 가지 목적에만 당도하기 위해 많은 것을 놓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나락의 구렁텅이에 떨어졌던 것은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필연적인 것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강가에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강을 건너오는 데 도움을 주었던 뱃사공 바주데바를 떠올려 찾아간다. 뱃사공은 그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들은 함께 생활을 한다.
고타마가 죽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카말라는 자신의 아들 소년 싯다르타를 데리고 강을 건너려고 한다. 쉬어가자며 떼를 쓰는 소년 싯다르타의 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러다 뱀에게 물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나루터 근처에 가다가 싯다르타를 마주치게 된다. 카말라는 고타마 대신 싯다르타를 보게 된 것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무릎에서 눈을 감게 된다.
아들 소년 싯다르타를 향한 사랑을 통해 얻은 깨달음.
싯다르타는 소년 싯다르타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소년 싯다르타는 제법 버릇 없게 자랐다. 건방지고 불손한 태도로 시종일관 싯다르타를 대했으며, 그럴 때마다 그는 자비로, 사랑으로, 기다림으로 아이를 대했다. 소년 싯다르타는 그의 모습을 견디지 못해 도망친다. 싯다르타는 아이를 찾으러 간다. 그러나 정원 대문 앞에 당도했을 때, 이 모든 욕망이 어리석은 욕망이라는 것을 느낀다.
아들에 대한 아픈 사랑으로 인해, 모든 단순하고 어리석은 충동과 탐욕들이 더 이상 어린애 같은 것들이 아니며,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그것 때문에 무한한 고통을 얻고, 그리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단일성을 느낀다.
그는 뱃사공 바주데바에게 자신의 고통을 얘기한다. 끊이지 않는 얘기를 하면서, 그 고통을 자신의 참회를 빨아들이고 있는 뱃사공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바로 신 자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바주데바의 권고에 따라 강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강의 소리를 듣는 법을 배우는 데 끝에 다 달았음을, 지난 세월들을 복기하면서 이 강을 통해 모든 것들이 합해져서 세상을 이루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싯다르타에게 모든 것을 알려준 바주데바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그 단일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열반의 지경에 이른 싯다르타가 전하는 말
노인이 된 고빈다는 현인이라고 불리는 뱃사공의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싯다르타는 여전히 구도자로 머무는 고빈다에게 말한다.
지나칠 정도로 구도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냐 물으면서 목적을 가진 사람에겐 오로지 자기가 구하는 것만 보게 되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세계는 매 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 내에 자비를 지니고 있음을 모든 단일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내가 그것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그것이 장차 언젠가는 이런 것 또는 저런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항상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가르침이라는 것은 그저 말들일 뿐이라고, 그 무수한 단어들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자신의 이마에 입을 맞추라는 청에 고빈다는 괴이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가 시키는 대로 따른다. 그리고 강물처럼 모든 것들을 보면서 모든 상반된 것들을 보며 단일성을 깨닫는다.
덧없음에 대한 심히 고통스러운 고백이었다. 그렇지만 그 어느 것도 죽은 것은 아니었다.
고빈다는 눈물을 흘리며 싯다르타에게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혀 절을 올린다.
싯다르타의 뒤를 이어보는 열반을 향한 나의 여정
헤르만 헤세의 수 많은 작품 중 읽었던 것은 고작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뿐이지만, 그의 글을 접할 때마다 내가 그 당시 고민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 얘기해주는 느낌이 있다. 싯다르타도 마찬가지였다.
올 초에 어떠한 일련의 사건으로 극심한 고통을 느낀 일이 있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괴로운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지면서 고통을 벗어날 다양한 방법을 찾았었다. 그때 접했던 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의와 데일리캄이라는 명상 어플이었다. 그 두가지가 고통을 서서히 잠재우면서 단 잠을 주었고,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어서 지금까지 즐겨 듣고 있다.
내가 법륜스님과 데일리캄을 통해 배운 것은 과업, 윤회, 알아차림 그리고 열반이다.
두 가지 선택 중 좋은 것만 취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 어떤 일을 선택하면 분명 과업이 따를 것이라는 것. 나쁜 일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고,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긴다는 윤회. 그리고 욕망, 욕심, 충동, 슬픔 등 어떤 감정들이 올 때, “아, 내가 지금 슬퍼하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리면서 흘러가게 두는 것. 명상으로 평안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수행하는 것. 그리고 더이상 괴로움이 없고 고요한 상태가 되면 그것이 열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옅어지게 되면서 권태라는 놈이 내 등을 타고 스물스물 기어올랐다.
그러면서 오히려 싯다르타처럼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어린애들 같은 부류로 취급하고, 부러워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없는데 그들은 가지고 있는 한 가지,
즉,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중요성을 부여할 줄 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싯다르타는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면서 윤회의 수레바퀴에 나와 열반의 상태에 다가가며 극복한다.
세속에 물들고, 권태에 빠지고, 자기 혐오를 겪으면서 이 모든 것은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일이었음을. 자신이 윤회속에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단일성을 느끼면서, 세상은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닌, 이미 완성된 것이라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이니, 하나의 일에 고통으로 느끼면 전체가 고통이 될 것이고, 사랑으로 느끼면 사랑이 될 수 밖에..
헤세는 깨달음은 말을 통해 전달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모든 말은 단지 형체가 없는 그저 말일 뿐이다. 고로 내가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깨우치는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내가 세상이 권태롭고 고통스러운 건 시니컬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대체 세상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나는 이미 불교에 귀의하여 구도자가 되었고, 열반에 이르겠다는 목적에 집중해서 방향을 잃어버린 고빈다와 같은 상태가 아닐까? 나는 계속 속세에서 살고 싶고 앞으로도 그럴 건데, 유혹과 비교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열반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 밤이다. 여하튼 이 싯다르타는 내 삶에 대한 고민에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었다고 의의를 두려 한다.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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