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간의 사랑을 곁들인 농촌계몽운동 소설
박동혁과 채영신의 만남은 OO일보사에서 주최로 학생계몽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을 위한 다과회에서 이루어진다. 체험담을 발표하는 시간에 서로의 사상이 비슷한 것을 알게 된 박동혁 군과 채영신의 인연은 서대문행 전차 그리고 영신의 후원자인 백선생댁의 초대로까지 이어진다.
"노동 운동일수록 무엇보다 실천이 제일일 줄 알아요.
피리를 부는 사람 따로 있고, 춤을 추는 사람이 따로 있던 시대는 벌써 지났으니까요."
동혁의 사상은 채영신의 가슴을 뛰게하고, 채영신의 곧은 정신은 동혁의 일상에 잔상을 남긴다.
서로 마음이 동했던 그들은. 채영신이 요양을 핑계 삼아 동혁이 사는 한곡리를 찾을 때서야 비로소 미래를 약속한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젊은 지식분자인 두 사람은 농촌을 위해 직접 나서 힘을 쓴다. 박동혁은 '한곡리'에서 채영신은 '청석골'에서.
동혁은 친구 건배가 속해있는 농우회를 이끌면서 회관을 만든다, 채영신은 혼자 고군분투하며 기부금을 받으러 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친다. 영신은 동혁과 달리 혼자 감당하는 고됨으로 합동의 성취감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주재소에서 예배당이 좁고 후락하다는 이유로 아동을 팔십 명 이상 받지 말라는 통보를 받는다.
창밖을 내다보던 영신은 다시금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예배당을 두른 야트막한 담에서 쫓겨나간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매달려서 담 안을 넘겨다보고 있지 않은가. 고목이 된 뽕나무 가지에 닥지닥지 열린 것은 사람의 열매다. 그중에도 키가 작은 계집애들은 나무에도 기어오르지을 못하고 땅바닥에가 주저앉아서 홀짝거리고 울기만 한다.
영신은 창문을 말끔 열어젖혔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떼어 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 앞턱에다가 버티어놓고 아래와 같이 커다랗게 썼다.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이 사건은 학원을 짓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기부금을 걷으러 다니고, 단 돈 일원이라도 아끼고자 큰 학원을 직접 짓는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여린 몸이 온전히 버틸 리가 없었다. 무사 끝에 지은 학원 낙성식에서 그녀는 졸도한다. 졸도 사유는 첫째는 맹장염이요. 둘째는 과로다.
요양 겸 아이들을 가르칠 것을 더 배워오라는 백현경의 권유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지만, 그곳에서 얻은 것은 향수병뿐이었다. 유학 생활을 무사히 마치지 못하고 귀국하여 돌아온 그녀는 또다시 학원을 위하여 일을 한다.
"각기가 심장까지 침범한 것만 해도 위중한데, 원체 수술을 완전히 하지 못한 맹장염이 재발이 됐습니다. 염증이 대단하니 어디다가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그녀는 동생 동화 때문에 주재소에 갇힌 동혁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유언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출소 후, 영신의 부고를 접한 동혁은 청석골을 찾는다. 슬픔에 잠기어 '당신이 못다 한 일과 두 몫을 하겠다'라고 다짐한다. 영신을 보내고 한곡리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농우회 회원들과 지었던 회관에서 상록수를 보게 된다. 마치, 동혁의 마음같이 굳건하게 서있는 상록수들을..
동혁이가 동리 어구로 들어서자,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불그스름하게 물들은 저녁 하늘을 배경삼고, 언덕 위에 우뚝우뚝 서있는 전나무와 소나무와 향나무들이었다. 회관이 낙성되던 날, 그 기쁨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회원들과 함께 파다 심은 상록수들이 키돋움을 하며 동혁을 반기 듯..
"오오, 너희들은 기나긴 겨울에 그 눈바람을 맞고도 싱싱하구나! 저렇게 시푸르구나!"
수능을 위한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당신을 충분히 웃고 울릴 이야기
청소년 시절, 최용신 선생 묘와 불과 5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아파트에 살았고, 상록수역을 하루 두어 번씩 나다녔다.
최용신 선생은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심훈과 친하지 않았던 건 온전히 수능 때문이었으리라.
시험의 부담과 함께 한국 문학의 거부감이 사라지면서 이 책을 접했을 때, 내게 남은 건 '이 재밌는 걸...' 하는 후회 어린 감정이었다.
영신과 동혁의 풋풋한 사랑놀음이 과년한 처자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가르치는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은 미소 짓게 했다. 또한, 남몰래 굶기를 밥먹듯이 하다 버티지 못하고 회관을 넘겨버린 친구 건배의 배신으로 얻은 "결국은 한 그릇의 밥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다."는 동혁의 깨달음은 현실의 씁쓸함을 상기시켰고, 책임감과 사명으로 한 평생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영신의 죽음을 볼 땐, 서글픔과 애상적인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표정을 잘 감추지 못하는 편이라, 상록수를 읽어 내려가면서 혼자 킬킬거리며 웃는 일도 있었고, 눈물이 고여 소맷자락으로 찍어내려 가며 훌쩍이기도 했다. 제삼자가 출퇴근하는 길에 나의 모습을 보았다면, 심히 '미 XX'스러웠으리라...
동아일보에서 주관한 '브나로드' 운동과 상록수의 사상적 지향점이 다르며, 심훈을 농촌소설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재평가해야 한다는 작품 해설마저도 흥미롭다. 수능을 위한 눈으로 보지 않으니 청소년기 때보다 되려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된다.
만약 누군가가 수능 때문에 검색했다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시험을 위해 보지 말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시 한번 보라고.
그러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재미가 보일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혼자 낄낄 거리면서 웃었던 부분들을 기록하며 이 글을 마친다.
영신과 동혁이 마음을 확인하던 장면
“그이하고는 단념하겠어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미련은 남겠단 말씀인가요?”
“아아뇨.”
“그러문요?”
“...”
동혁은 영신이가 경솔히 대답하지 못하는 속종을 약빨리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욱하지 않았다.
“그럼 내 태도를 보신 뒤에, 좌우간 결단을 하시겠단 말씀이지요?”
동혁이도 자신 있게 다져 묻는다. 그 말에 영신의 입에서는 분명히
“네!”
하고 한 마디가 서슴지 않고 떨어졌다.
금융조합 다니던 남자에게 단념해주길 바란다는 편지를 쓰자 날라온 답변
금융조합 다니는 남자에게서는
얼마나 이상이 높고 주의가 맞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이 세상 복록을 골고루 누리며 사나 두고 보자.
아무튼 조만간 직접 만나서 최후의 담판을 할 테니 그런 줄 알아라
라는 저주 비슷한 회답이 왔다.
예배당을 빌려 아이들을 가르치는 채영신의 고충
더구나 새로 글을 깨친 아이들이 어느 틈에 분필과 연필로 예배당 안팎에다가 괴발개발 글씨도 쓰고 지저분하게 환도 친다. '신퉁이 개자식이라' '갓난이는 오줌을 쌌다더라'하고 제 동무의 욕을 쓰기도 하고, 심지어 십자가를 새긴 강당 정면에다가 나쁜 그림까지 몰래 그려놓기도 하여서, 그런 낙서를 볼 때마다 장로와 전도사는 상을 찌푸린다.
명절날, 보름달을 보며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그렇죠, 네? 선생님. 그런데 참 정말 저 달 속에서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대유?"
영신은 바늘을 잡았던 손을 쉬며 달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그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얘기란다. 그런 건 없어두, 커다란 망원경이란 걸 대고 보면
사람이나 짐승 같은 건 없지만 달속에 산이 잇고 시내 같은 게 있단다."
"그럼 그 물이 어디로 쏟아진대유?"
"아이구 어쩌나. 우리 머리 위로 막 쏟아지면..."
동혁이 고리대금업자 기천에게 술을 진탕 먹여 이자 한 푼 내지 않고 회원들의 부채를 탕감시킨 뒤,
진흥회 회장 선출 자리에서 하는 말
동혁은 신중히 말을 이어 고리대금업자의 발호와 간교한 착취 수단으로 말미암아 빈민들의 고혈이 얼마나 빨리고 있나하는 것을 숫자를 들어가며 폭로하고
"앞으로 진흥회 회원은 과거에 중변으로 쓴 돈도, 금융조합에서 놓는 저리 이상으로 갚지 말고, 더구나 회의 책임자로서는 절대로 돈놀이를 해먹지 못할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하고 또 실행해야 합니다."
라고 부르짖은 다음 목소리를 떨어뜨리더니
"오늘 회장이 되신 강기천씨는, 우리 농우회원들이 긴 여러 해 묵은 빚을 변리는 한 푼도 받지 않으시고 깨긋이 탕감해주셨습니다."
미스 콩틀딱. 오늘의 서평 마침!
다음은 싯다르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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