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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사의 사생활/- 독서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고도는 무엇인가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제목을 보면 왠지 이끌리는 책들이 있다.

'싯다르타' '아마겟돈을 회상하며' 등

제목에서 뭔가 느낌을 받으면 주저 없이 장바구니에 책을 넣게 된다.

고도를 기다리며도 그러한 책 중에 하나다.

원제목은 'Waiting for Gotdot'으로 다소 멋대가리 없이 느껴지지만,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고도', '기다림'이라는 단어에서 서정적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고도는 누군가의 이름이지만 처음 접했을 때, 고도(高度)에 대한 연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2막으로 구성된 희곡이다.

특징인 것은 무대가 되는 배경엔 들판에 나무 하나만 덜렁 서있는 것으로 설명되어있다.

무대도 단출한데, 등장인물도 그러한 편이다.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 포조, 럭키, 소년. 이 다섯이 무대의 전부다.

 

줄거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라는 자를 기다리는 내용이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도는 소년을 통해 전갈을 전해 올뿐.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그는 이름만 존재하며 극 중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딱히 이렇다 할 사건이 없어서 더 이상 덧붙일 설명도 없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맥락이 없고 추상적 대화를 주고받는다.

사람들은 전날 있었던 일, 만났던 사람조차도 잊어버리고,

고도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조차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나마 맥락이 있는 등장인물이 있다면, 오로지 블라디미르 딱 한 사람뿐일 것이다.

 

 

 

 

블라디미르 이런 딱한 놈 봤나!

에스트라공 됐다 됐어! 우리 서로 욕지거리나 하자!. (서로 욕설을 퍼붓는다. 이어서 침묵) 이제, 그만 화해하자.

블라디미르 고고!

에스트라공 디디!

블라디미르 악수하자!

에스트라공 좋다!

블라디미르 내 품으로 와!

에스트라공 네 품안으로?

블라디미르 (팔을 벌리며) 이리 와!

에스트라공 그래 간다.

 

둘은 서로 껴안는다. 침묵

 

블라디미르 장난을 하니까 시간이 빨리 가는구나!

 

침묵.

 

에스트라공 이제 뭘 한다?

블라디미르 기다리면서 말이야?

에스트라공 그래 기다리면서

 

침묵.

 

 

학수고대하는 무언가를 기다리다 보면

시간이 빨리 흘러가길 바란다.

그때만큼 시간이 느리게 가는 순간도 없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혹은

빨리 보내기 위해

쓸데없는 욕설을 해보고, 악수도 하고, 껴안아도 본다.

 

 

에스트라공 그만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순 없다.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사이) 뭘 한다?

 

 

엇갈릴까 봐 찾으러 갈 수도 없고,

끝내 올 거라는 희망은
그들이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속박한다.

 

그러나 고도는 소년을 통해 내일을 기약하기만 할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고도는 누구인가?

 

 

고도가 누구냐는 질문에 사무엘 베케트는 ‘그걸 알았으면 자신이 작품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한 일화가 유명하다.
고도는 정해진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읽는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에 맞추어 이해하고,

심지어 한 사람이 시간차를 두고 읽을 때도 해석이 달라진다고 한다.

입체적인 작품. 이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쉬는 날 집에서 뭐하세요?'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던지는 질문이다.

30줄에 들어서면서 삶에 대한 권태가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이 권태를 어떻게 이겨내나 싶었다.

 

이 권태를 끝내보려고 그들처럼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모임도 나가보고, 연애도 해보았다.

하지만 재미는 스쳐 지나갈 뿐,
권태는 육중한 무게로 언제나 나를 눌러 내리고 있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지루함을 견뎌내려고
이것저것 해보던 장면에서 권태의 끝을 기다리던 내 모습이 보였다.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지루함과 속박되어 있음을 공감했다.

 

고도는 누구일까?

저들이 나와 같다면,

고도는 기다림의 '끝'일 것이다.

희망은 불확실하다.
어쨌든 확실한 건 고도를 만나면, 기다림이 끝난다는 것이다

 

내 삶의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권태의 끝.
어떻기 될 거라는 희망의 끝.
불안의 끝.
조급함의 끝.

 

난 나의 권태를 포함해
내가 기다리는 무언가 들이 어서 끝을 내길 바란다.

기다림이라는 자체가 또 다른 삶의 고문이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