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다.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은 여성들이 매춘을 하자, 이를 혐오한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원하는 여인상을 담아 조각상을 만들었다. 조각상에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주는 것도 모자라 조각상을 사랑하고, 그녀와 결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염원을 올린다.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을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사람이 된 갈라테이아는 피그말리온과 결혼한다.
5막과 후일담으로 구성된 희곡,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은 이 신화 속에서 유래했다.
괴팍한 천재 음성학자인 히긴스가 천박한 빈민가 출신의 일라이자를 귀족'같은' 우아한 여인으로 조각한다는 내용.
그러나 이 책의 방점은 피그말리온보다는 갈라테이아에게 찍혀있다.
신화 속 갈라테이아는 자신을 조각한 피그말리온과 결혼했지만,
책 속 갈라테이아인 일라이자는 자신의 의지로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갈라테이아는 자신을 만들어준 피그말리온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사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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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이자 - 빈민가의 꽃 파는 소녀. 갈라테이아. 꽃 집 점원이 되기 위해 억양과 말투를 교정받으려고 히긴스의 교육을 받는다.
히긴스 - 괴팍한 천재 음성학자. 피그말리온. 말 첫마디마다 '내가'를 붙이고, 타인의 감정을 생각지 않는 지독히 이기적인 남자. 일라이자를 우아한 여성으로 조각한다.
피커링 - 돈 많은 언어학자 피커링. 일라이자를 우아한 여성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음. 1막의 지칭처럼 '신사'다운 면모가 많은 사람.
프레디 - 가난한 중산층 집안의 아들. 우아한 여성으로 거듭난 일라이자를 사랑한다.
둘리틀 - 화려한 언변가이자 일라이자의 아버지. 비보호대상으로서의 삶을 즐기다가 히긴스의 장난같은 편지로 인해 후원자가 생겨 막대한 재산을 얻게 된다.
둘리틀 - 일라이자 아버지. 화려한 언변가이자 하류층이 체질이던 사람. 히긴스의 장난 같은 편지 때문에 술쟁이 청소부에서 벼락부자로 거듭난다.
그 외.
히긴스 부인 - 히긴스 모친.
피어슨 부인 - 히긴스 가정부.
아인스포드 힐 부인 - 프레디와 클라라의 모친. 과부. 가난한 중산층의 표본
클라라 - 프레디의 여동생. 속 빈 강정과 같이, 돈은 없고, 권위를 갖고 싶어 하는 중산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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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막 - 비 오는 날. 세인트폴 교회 처마. 리자(일라이자)와 히긴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막이다. 리자는 자신의 말을 받아 적는 히긴스를 사법경찰로 오해한다. 히긴스는 음성학자임을 밝히고 자신의 일을 소개하면서 너를 여왕처럼 만들어줄 수 있다고 한다.
2막 - 리자는 꽃 집 점원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어느 정도 우아한 말투를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수업을 받기 위해 히긴스를 찾아간다. 이때 히긴스와 피커링은 리자를 6개월 안에 우아한 여성으로 조각하는 데 내기를 건다. 그녀를 히긴스의 집 안에 들이고, 피커링은 그녀의 변신에 드는 물질적인 모든 것을 지원한다. 셋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3막 - 중간 평가는 히긴스 모친의 집에서, 마지막 평가는 런던의 대사관저의 큰 연회에서 이루어진다. 일라이자가 상상 이상의 성공을 거둔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히긴스의 혹독한 가르침만이 전부는 아니다. 음악이던, 음성학이던. 일라이자의 예민한 귀에도 있었다. 히긴스는 일라이자의 그런 타고남을 만족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리자는 우아한 여성으로 거듭났다. 중간 평가에선 리자가 거리에서 꽃 팔던 시절 마주쳤던 사람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마지막 평가에선 공주로 오인받기까지 한다. 히긴스의 조각질은 성공적이었고, 내기는 완벽하게 이겼다.
4막 - 쇼는 끝났다. 히긴스는 이 내기가 끝남을 후련해한다. 반면, 리자는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제 더는 길거리에서 꽃을 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말 귀족 여인이 된 것도 아니다. 리자는 자신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히긴스는 내기가 끝난 것만 후련해하지 그 뒤의 리자에 대해 아무 상관을 하지 않는다. 화가 난 리자는 슬리퍼를 히긴스에게 던진다. 둘은 한차례의 말다툼 뒤, 리자는 히긴스 몰래 집을 떠난다. 문밖에 리자를 남몰래 흠모하던 프레디를 마주치게 되고, 그녀는 그와 함께 도주를 한다.
5막 - 히긴스는 히긴스의 모친을 찾아간다. 달아난 일라이자를 찾기 위해서다. 일라이자는 히긴스 모친 집에 숨어있었다. 히긴스 부인은 일라이자가 히긴스와 피커링, 두 사람이 잘못한 점을 알려준다. 일라이자는 히긴스와 피커링 두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중요한 시험의 날 단 하나의 실수 없이 완벽하게 일을 해낸 거라고. 그런데 그들은 일라이자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끝나서 기쁘다는 둥 그 일이 지겨웠다는 둥 얘기나 주고받았다고. 그리고 일라이자와 히긴스가 얘기할 수 있도록 일라이자를 불러낸다. 히긴스는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을 위한 것이지 상대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 작품에 대한 소유욕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애를 내버려 두세요, 어머니. 혼자 말하게 내버려 두세요. 내가 그 애 머릿속에 넣어 주지 않은 생각, 내가 그 애 입에 심어 주지 않은 단어가 하나라도 있나 곧 보시게 될 거예요. 코번트 가든의 으깨진 배추 잎을 가지고 제가 이 물건을 만들어 냈다니까요. 그런데 이제 나한테 숙녀 행세를 하려고 하다니."
둘 사이 또다시 말다툼이 일어난다. 하지만 간극은 절대 좁혀지지 않는다.
말다툼 끝 무렵에 일라이자는 자신이 당신 없이도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그리고 프레디와 결혼할 것임을 암시한다.
극 끝에 공개되는 후일담에서도 이 사실을 강조한다. 일라이자는 히긴스와 결혼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둘의 기묘한 사이는 지속될 것만 같다. 마지막 대화는 이러하니깐.
히긴스 - 안녕히 가세요, 어머니. 오, 그런데, 일라이자., 햄하고 스틸턴 치즈 좀 주문해 줄래? 그리고 내게 순록 가중 장갑 8호 한 벌과 새 양복에 어울리는 넥타이 좀 사다 줘. 색깔은 네가 선택해도 된다.
리자 - (오만하게) 양털로 안을 댄 장갑을 원한다면 8호는 당신한테 너무 작아요. 그리고 세면대 서랍에 잃어버린 넥타이가 세 개나 있어요. 피커링 대령님은 스틸턴보다 글로스터 치즈를 더 좋아하세요. 당신은 차이점을 모르지만요. 오늘 아침에 피어스 부인에게 햄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전화했어요. 당신이 나 없이 어떻게 해나갈지 상상이 안 되네요. (당당하게 나간다)
[내 생각]
피그말리온은 신분과 여성 문제를 꼬집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열린책들 뒤편에 역자 해설이 속 시원할 정도로 명쾌하게 잘 되어있다.
그 해설을 보고, 작품 이해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분 여성 등과 같은 주제는 각설하고
결말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연극에서, 그리고 뮤지컬화, 영화화되면서 결말이 바뀌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로맨스와 해피 엔딩을 원했지만, 이 작품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바꾼 결말을 보며 분노하는데, 추후 둘 사이가 해피 엔딩일 수 없는 이유를 후일담으로 추가했다고 한다.
이 책의 결말을 바꾸려고 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에겐 있는 그대로 무언가를 보는 일이 어렵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고.
사랑이 볼모가 될 땐 더욱 그렇다고.
극 초반에 일라이자는 없는 형편에도 택시를 타는 작은 사치를 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사가 택시에 타지 못하게 하자 그에게 돈을 보여 주고, 굳이 그 택시를 탄다.
히긴스의 집을 찾아갔을 때에도 그렇다.
내쫓으려고 하는 피어슨 부인에게 자신은 수강료를 갖고 있으니 배울 권리가 있다고 당당히 밝힌다.
그리고 찾아간 이유도 꽃 집 점원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일라이자는 자신의 거처는 스스로 정하며,
정당한 권리를 요구한다.
신화 속 갈라테이아와 다른 점도 이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그녀가 상류층처럼 조각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기가 끝난 후의 대사를 보면 불씨는 내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리자 (절망 중에서도 자신을 추스르며) 난 무엇에 어울리는 사람이죠? 나를 무엇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만드신거예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해요? 난 뭘 해야 하죠? 나는 어떻게 될까요?
(....중략...)
히긴스 (뒤늦게 친절한 생각이 떠올라서) 어머니가 괜찮은 남자 한둘은 찾을 수 있을 거야
리자 도트넘 코트 거리에 살았을 때도 그것보다는 나았어요.
히긴스 (정신을 차리면서) 무슨 말이니?
리자 나는 꽃을 팔았지 나를 팔지는 않았어요. 당신이 나를 숙녀로 만들어 버려서 나는 이제 어떤 것을 팔아도 어울리지 않아요. 나를 발견했던 그곳에 그대로 놔두지 그랬어요.
이제 히긴스를 살펴보자.
일라이자에 대한 소유욕은 분명 존재한다.
일라이자가 집을 나갔을 때, 그녀를 찾으러 간 것이 그에 대한 방증이다.
그리고 일라이자가 '내가 심어준 말. 내가 심어준 생각'외에 움직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그러나 그는 로맨스가 되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 외에 타인에게 완벽하게 무심하기 때문이다.
말 첫마디마다 '내가'를 강조하는 그의 대사들과
일라이자가 듣는대서 가르치는 일이 지겨웠고, 끝나서 기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조그마한 친절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로맨스가 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그에게 어머니보다 완벽하고 우아한 여성은 없으며 여자들이란 대접을 바라는 귀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라이자는 의지가 있고, 권리를 요구하는 인물이다.
『무관심이 보통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정도보다 훨씬 깊은』 히긴스를 잘 알고 있었다.
히긴스는 자신이 일라이자를 만들었지만, 그녀가 자신과 동등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그는 타인에게 친절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인물들인데 해피 엔딩이 가능하겠는가?
그들이 로맨스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성격을 바꿀만한 인물들인가?
로맨스는 사람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가 본 대중은 그러기를 원하고, 기대하고, 바라더라.
가끔 친구들 얘기나 인터넷에 올라온 연애 고민 글을 보면서
비슷한 맥락의 생각을 했었다.
일 하느라 카톡을 잘 못하거나, 피곤해서 다음번에 만나자거나, 몰래 헌팅을 했다거나, 게임을 하느라 관계가 소원하거나,,, 등과 같은 고민을 얘기하면, 헤어지라는 조언은 둘째치고 이런 댓글이나 조언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남자는 좋아하면 그렇게 하지 않아.”
나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했어야 한다는 기대가 만연해 보였다.
내가 보기엔 상대가 생겨먹길 그렇게 생겨먹었고,
관계를 유지하는 건 받아줄 아량이 있거나 없거나에 달린 것 같아 보이는데 말이다.
사랑이 사람을 바꾼 일이 있다면, 아주 드문 일이거나 오래가지 못할 일일 텐데, 왜 우린 서로에게 사랑만 붙었다 하면 환상을 심어주려고 할까?
애정이 사람을 바꿀 수 없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 충분한 이유는 존재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피그말리온 원작의 결말이 납득되었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일라이자는 히긴스와의 해피 엔딩을 거부하며, 그에게 슬리퍼를 집어던진다.
그것은 일라이자의 의지이다.
피그말리온 영화 버전인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드리 헵번처럼
히긴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갈라테이아는 결코 피그말리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와 그의 관계는 너무 신성해서, 전적으로 좋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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