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어느 스쳐 가는 사이트에서 추천하기도 했고, 단순히 제목 때문에 끌려 읽게 되었다.
어떤 파리들이 나와서 대왕 노릇을 하는 것일까? 그 파리는 무엇에 대한 상징일까?
그런 의문들을 가지며 책을 펼쳤다.
[줄거리..]
세계 2차 대전 중, 무인도에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이 불시착했다.
아이들을 내리고 간 비행기엔 불이 붙었으니 구조하러 돌아올 가능성도 희박했다.
처음엔 소라를 가진 사람이 발언권이 있거나, 봉화를 지킬 당번을 정하는 등 체계적 시스템하에 지내는가 싶었다.
그러나 이내 실체 없는 짐승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면서 아이들의 순수한 무지와 잔혹함이 드러난다.
그리고 질서는 서서히 파괴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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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은 랠프, 잭, 돼지다. 돼지는 별명인데,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 작품의 랠프와 잭 이름이 <산호섬>이란 작품에서 따온 것으로 보아 본래 이름은 피터킨일거라 추측해본다.
책은 랠프와 돼지가 처음 만나며 시작한다. 랠프는 바닷가에서 소라를 줍고, 돼지의 권유로 힘껏 소라를 불었다.
소라의 소리 때문에 곳곳에 흩어진 아이들이 모인다. 잭과 성가대원 무리도 등장한다.
모인 무리는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큰아이들과 대여섯 살 되는 작은 아이들이었다. 어른은 없었다.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집회를 만들었다.
투표로 랠프를 대장으로 선출했고, 소라를 쥐고 있는 사람에게 발언권이 있는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였다.
랠프는 성가대원을 사냥 부대로 임명했다.
그리고 합심하여 오두막을 짓기로 하고, 구조에 결정적 역할을 할 봉화 당번을 정하기도 했다.
잭이 봉화 당번이 되었다. 그러나 의무는 뒷전으로 하고 멧돼지 사냥 놀이에 빠져있었다.
동시에 멀리서 배 한 척이 지나가게 되고, 봉화의 불이 꺼져있어 그들은 구조받지 못한다.
이 일이 분란의 시발점이 되었을 거다. 힐난 받은 잭은 엉뚱하게 돼지를 때려 화풀이를 한다. 돼지의 안경 한 알이 깨졌다.
아이들은 미지의 무언가를 두려워한다. 실체 없는 짐승에 대한 괴소문이다.
아이들은 그것에 환상을 더해가며 불안해하고 두려움에 떤다.
어느 날 공군으로 추정되는 군인이 낙하산으로 탈출하다가 죽게 되는데
시체가 산꼭대기 봉화 근처에 떨어졌다.
어두컴컴한 밤에 쌍둥이 형제는 이를 짐승으로 오해하게 되며 소동이 일어난다.
아이들은 봉화를 피우러 산꼭대기에 가지 못한다. 하지만 구조를 위해 연기는 계속 올라야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잭과 랠프는 실랑이를 벌이다가 두 무리로 갈리게 된다.
멧돼지를 잡아먹을 수 있는 잭파와 봉화의 중요성을 아는 랠프파.
결국, 아이들은 눈앞의 이익을 좇아가고, 랠프파엔 고작 쌍둥이와 돼지 세 사람만이 남는다.
어느 무리에도 끼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있던 사이먼이 짐승의 실체를 발견한다.
그는 짐승이 공군의 시체라는 사실을 알려주러 아이들에게 간다.
그 시각 잭파 아이들은 랠프파와 실랑이를 벌인 뒤, 이상한 춤사위로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사이먼은 그때 등장하는데, 어둠 속에 나타난 아이를 짐승으로 오인하고
잭파 무리가 달려들어 물어뜯고 때리고 할퀴어 그를 죽인다.
잭 무리의 잔혹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기를 익힐 불을 피우기 위해 랠프 무리에게서 안경을 약탈해간다.
그리고 랠프와 돼지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다음날 랠프 무리는 안경을 돌려받으러 간다.
"네가 불을 달랬으면 언제든지 주었을 거야. 그런데 넌 달라지를 않았어.
도둑놈처럼 몰래 들어와서 돼지의 안경을 훔쳐갔어!"
싸움이 절정으로 치닫고 잭과 랠프는 몸싸움을 벌인다.
랠프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소리쳐도 아이들은 듣지 않는다.
오히려 야유 소리만 커진다.
그때, 잭파 일당인 로저가 큰 바위를 굴려 돼지를 쳐 죽인다.
한 차례 침묵이 지나간 뒤, 잭은 나서서 얘기한다.
"어때? 네게도 저렇게 본때를 보여줄 테다! 장난이 아니었어! 너에겐 이제 부하도 없어! 소라도 없어지고 -"
그리고 잭은 살의를 가지고 랠프에게 창을 던진다. 그들은 쌍둥이를 겁박하여 자기 무리에 넣고 랠프를 사냥한다.
아이들은 멧돼지처럼 랠프를 사냥하기 위해 대열을 지어 그를 몰아넣는다.
어디에 숨어있어도 그들은 랠프를 찾아내고 그를 향해 창을 던진다. 숨어있지 못하도록 숲에 불을 지른다.
산은 불타고 랠프는 더는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다. 그는 뻥 뚫려있는 모래사장으로 달려간다.
랠프가 죽음의 문턱에 닿았을 때, 숲의 불을 보고 구조하러 온 장교를 마주치게 된다.
장교는 아이들의 모골을 살피더니 말한다. "재미있는 놀이를 했군"
"영국의 소년들이라면.. 너희들은 모두 영국 사람이지? 그보다는 더 좋은 광경을 보여줄 수가 있었을 텐데.. 내 말은.."
랠프가 대답했다. "처음엔 그랬어요.. 잘 돌아가다가.. 처음엔 합심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장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 처음엔 <산호섬>에서처럼 잘 지냈단 말이지?"
랠프는 울음을 터뜨린다. 이어서 잭도 큰 소리를 내어 울음을 터뜨린다.
무인도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뒤덮이며 이 소설의 막이 내린다.
[책을 읽고..]
이 작품은 무지한 아이들을 무대에 올려, 인간의 본성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에게 가장 먼저 나오는 본성은 선일까 악일까?
윌리엄 골딩은 후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제목이 파리대왕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서 아이들의 잔혹함에 경악했고, 충격받았다.
이성과 질서가 없고 탐욕과 난폭함만 남았다.
가장 눈에 선했던 건
젖을 물던 새끼돼지들과 누워서 평화롭게 햇볕을 쬐던 암퇘지에게
창을 던지고 찌르고 쫓고 몰아넣으며 죽이던 장면이다.
정말 사람들은 극한 상황에 닥치면 이렇게 변할까?
경악은 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실체 없는 짐승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해있었다.
한 마디로 안전하지 못한 환경이었다.
자신의 안위가 위협받는데 질서? 그것이 대수겠는가?
일반 사람이라고 다를까?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할 것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본능과도 같다.
거기다 교육도 질서도 없다면 하지 말아야 할 행동도 지켜야 할 행동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폭력과 집단행동은
선과 자의보다 강해 왔다.
[이 책의 매력]
랠프, 잭, 돼지, 사이먼, 소라, 안경, 봉화 등 저마다의 상징과 비유가 있다.
책을 읽은 뒤, 유튜브나 나무위키를 찾아 시대적 배경과 영국의 문화에 대해 들으면서
저마다 어떤 상징이었는지, 왜 그런 비유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책 제목인 파리대왕의 의미는 악마였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에 대적하는 농경신 바알을 낮춰 부를 때 파리의 주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잭이 돼지를 때리면서 안경이 깨졌다. 이것은 동시에 질서도 파괴가 되어갔다는 상징물이다. 막판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재미있는 놀이를 했군"이라고 말했던 어른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교도 2차 세계대전 중이니 전쟁터로 돌아가면 똑같은 짓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을 보고 들으면서 내가 그 시대에 살던 영국 국민이었다면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을지 가늠이 되었다.
한 시대를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
이것이 파리대왕을 읽는 중보다 읽은 뒤가 더 좋았던 이유다.
[번역본에 대하여...]
이 책을 통해 번역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영어를 못해 원서를 읽을 수 없는 게 천추의 한이 될 것만 같았다.
민음사 버전엔 두 줄당 한 개의 한자어와 일상에서 쓰지 않는 용어들이 튀어나왔다.
나중에 찾아보려고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두었더니 책 옆면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래도 '무식한 내 탓을 해야지~'하고 읽어 내려갔는데,
아이들 대사에서도 나오니 흐름이 와장창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
작중 아이들이 12살이 아닌 32살 같이 느껴졌다.
한 예로 파리대왕에서 잭이 멧돼지를 잡을 계획을 잡을 때, '미늘'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미늘은 갈고리 형태로 생긴 낚싯바늘이다.
12살 잭이 미늘이란 단어를 일상어처럼 쓰길래, '잭의 아버지가 낚시를 즐겼나 보다, 낚시할 때 애를 데리고 다녔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도 그 용어를 같이 쓰고 있었다. 단체로 아버지가 낚시꾼일리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또 의문이 들었다. 애들이 무인도에서 미늘을 대체 어디서 구한 거지...?
피그말리온을 읽었을 때, 히긴스의 집에 축음기, 피아노 등 배경들을 묘사하면서 이 사람이 소리에 관해 얼마나 연구하는 사람인지 가늠했고, 히긴스 모친의 집에 대해 묘사할 때도 소유한 물건과 장식만 봐도 얼마나 기품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내 말은 단어 하나하나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 책의 번역으로 인해 잘 못 생각하는 경험을 하면서 사람들이 번역가를 따지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후기를 찾아보니 문예출판사가 그나마 낫지만, 썩 사정이 좋은 것 같진 않았다.
이미 사둔 책은 어쩔 수 없으니, 다음 책을 구매할 땐 번역가 평을 보고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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