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 책은 중국의 산아 제한 정책인 '계획생육'의 이면에 숨겨진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화자인 '커더우'가 웬 일본인인 '스기타니 요시토' 선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서신체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으며, 마지막 5부는 커더우가 쓴 극본이 기록되어 있다.
커더우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주인공을 살펴보라면 그의 '고모'라고 할 수 있겠다.
줄거리 (스포 주의)
고모는 동네에서 외모로나 능력으로나 총망 받던 인물이었다.
미신과 민간요법을 버무려 산모의 출산을 관장했던 산파들을 물리치고(?),
산부인과 여의사로서 동네 주민들의 출산을 도왔다.
그렇게 생명을 받아내던 고모가 2부로 들어서면서 철저하게 생명을 죽여내는 인물로 변한다.
한결 살림살이가 나아지자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는데,
이를 제한하고자 중국에서 산아 제한 정책인 계획생육을 실시한다.
그때 고모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그리고 당의 개로서 계획생육 중심에 서 있었다.
그 시대 그 나라 사람들은 예전 우리나라처럼 첫째가 딸아이라면 대를 물릴 남자아이를 낳기 위해 둘째를 가지려고 애를 쓴다. 이때, 고모는 산아제한의 일과로 둘째를 임신한 집에 찾아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낙태를 시키려고 한다.
사람도 가리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던, 자신이 받아낸 아이의 자식이던, 조카의 아이까지.
고모는 개인이 아닌.
당의 개로써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아이를 낳으려는 자와 낳지 못하게 하는 자가 충돌하면서, 계획생육의 폐해가 생긴다.
출산하기 위해 도망가거나, 낙태 과정에서
건강했던 산모까지 죽어나가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정책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화자 커더우의 아내인 '왕메이런'도 희생자가 된다.
그랬던 시절 속에도 시간은 흐른다.
당의 늙은 개는 은퇴를 했다.
자세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 회한이 서려있었을 것이다.
그 힌트는 생명과 같은 작은 아이들을 빚는 점토공예가 하다오서우와 결혼하게 된 일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분명 숙소로 돌아가려 했는데 저도 모르게 웅덩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나봐요
...
한순간 사방팔방에서 모두 일제히 울기 시작했어요. 어찌나 개굴개굴, 꽥꽥 울어 대는지 소리가 하나로 모여 그대로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
아무리 빨리 달려도 꽥꽥거리는 처량하고 원한에 가득한 울음소리가 사방팔방에서 절 자꾸만 얽어매는 겁니다.
...
달려가면서 몸을 털고 두 손으로 자꾸만 떼어 냈어요. 개구리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날카로운 비명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부에서 이야기의 초점은 고모에서 커더우 자신으로 바뀌는데, 마오쩌둥이 죽고 나서도 정책과 사람들의 충돌은 계속되고 있는 모양새다.
커더우의 소꿉친구인 천비와 그의 아내는 계획생육 정책의 피해자이다.
천비의 아내는 어떻게 서든 아들을 낳겠다고 땅굴에 숨고, 배를 타고 도망가며 둘째를 낳았다가 죽었는데,
불행하게도 아이의 성별은 여자아이였다.
그 뒤 천비는 아내를 잃은 슬픔과 대가 끊겼다는 시름에 잠겨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
이때, 고모와 커더우의 두 번째 아내인 샤오스쯔가 아이에게 천메이라는 이름을 주고 한동안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를 좋아했던 샤오스쯔는 천비가 천메이를 데리러 오자, 울고불고하며 겨우 돌려주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놈의 아들과 대가 무슨 대수라고.
시간이 흘러 샤오스쯔가 예순이 넘긴 나이에 커더우의 정자를 뽑아내었고,
성인이 된 천메이에게 주입해 대리모를 시키는 것이다.
내 생각 (스포 주의)
나는 이 비극을 오로지 계획생육에만 원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사명으로 장남을 낳을 때까지 무분별하게 아이를 낳았던 문화와
그를 저지하려는 국가 정책의 충돌에서 비롯된 비극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결국 왕메이런의 죽음과 천비 아내의 죽음은
남자아이를 낳겠다는 그들의 사상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죽음이 당연했다는 얘기로 곡해하진 마시라.
내 말은 단지, 비인도적인 것은 정책뿐만 아니라, 특정 사상이 물든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샤오스쯔도 커더우 몰래 정액을 빼내 대리모에 주입해 아이를 갖지 않았던가.
시대가 바뀌면 불필요한 문화도 없어져야 합당하다고 보인다.
조선시대 말기 때처럼 다들 배고프고 못 사니까 장남에게
모든 재산, 권한, 책임을 주어 가문을 유지해야 했던 것은
그 시대에 필요했던 문화였을 테지만,
현대에 들어선 골칫거리 외에 작동하는 기능을 찾아볼 수가 없다.
시대가 바뀌면, 정책도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산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보다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없으며,
여기에 사상과 정책이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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