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할 일 하다가 돌아보면,
첫째 고양이 아쿠가 한쪽 다리를 하늘 높이 치켜든 체 열심히 그루밍을 하고 있는 걸 발견한다.
본래 목표 지점은 똥꼬였겠지만 자기주장이 강한 그녀의 뱃살들은 쉽게 닿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배 언저리만 핥고 있다.
그 모습을 짠하게 보고 있노라면 금새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러면 아쿠의 눈엔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한다.
내가 금방 휴지를 들어서 엉덩이를 닦아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꼴에 고양이라고 육중한 몸으로 잽싸게 도망가는 아쿠를 집어들어 엉덩이를 닦아준다.
휴지에 축축하게 이물질이 묻어나온다. 엉덩이는 늘 축축하고 습해있다.
아쿠 엉덩이에 이물질이 묻어난 건 작년 중순부터였다.
처음엔 질염이니 뭐니 오진을 받고 탄식했는데,
4 군데 병원을 돌아다닌 끝에 밝혀진 원인은 '비만'이었다.
생식기 쪽에 살이 접혀있어서 소변을 보고 나오면 물이 그대로 고여 습한 환경이 조성되었고,
그곳에 곰팡이와 세균이 증식하면서 피부 질환을 불러온 거다.
여자 사람도 잘 안 말리면 염증 생기고 얼마나 가려운데,,,
가렵고 따끔하는데 긁지 못하는 고통이란...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아쿠는 고양이라서,
그 고통을 무표정한 얼굴로 감내하고 있다.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시각 외의 감각이 발달되어 있고 예민하다.
그들은 언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예민한 감각으로 상대를 관찰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아쿠와 마린이는 내 목소리의 높낮이로 화가 난 건지 기뻐하는 건지 파악한다.
내 움직임에서 나도 모르는 패턴을 발견하고 예측해서
잽싸게 도망가거나 기대감에 부풀어 소리 내며 다가갈지를 결정한다.
애들과 살면서 딱 한 번 울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고양이 두 놈 모두 다가와 앉아서 유심히 관찰하던 것도 아마 동일한 이유일 거다.
그들은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하고, 피드백을 준다.
그런데, 사람 중에서도 특히 무심한 편에 오감이 둔한 나는
그들의 신호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끔 뒤늦게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미안해할 때가 많다.
요즘 아쿠는 다이어트라는 추가적인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 좁은 방구석에서 유일한 낙이 먹는 것일텐데,
맛없는 저칼로리 다이어트 사료만 제공받는 그 심정이란..
미안함에 같이 다이어트 하자 해놓고
집사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중도하차. 아쿠는 여전히 강제 다이어트행이다.
그렇게 의리를 저버려 놓고,
저 무표정한 얼굴로 맛있는 걸 못먹고 꾹 참아야하는 고통은 어떠할지..
또 다시 가늠해 보는 소소한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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