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까지도 나는 개는 그냥 개. 사람은 사람.
개 먹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돼지도 먹고 소도 먹고 닭도 먹는데
시골가면 그런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는 마당에
파양이 무슨 대순가.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개 싫어하는 사람 있을 수 있지.
그런 생각으로 살았다.
성인이 되고 다시 살던 시골로 부모님이 귀향을 했다.
그러다 우리 발바리, 너부리를 만난 것이다.
우리 엄마는 다른 개들에게 그러지 않았으면서
너부리에겐 유달리 애정을 쏟아댔다.
개가 무슨 가게에 있어.
짖어서 손님 나가잖아.
이게 얼마나 개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짜증나는 일인 줄 알아?
좀 묶어 놓으면 안돼?
개 빨리 밖으로 내보내.
엄마 개가. 개 주제에 말을 안들어.
주인 말을 들을 줄을 몰라.
저 봐 혼내니까 또 도망가잖아.
엄마는 나와 동물을 싫어하는 아빠한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겨울에 추우면 몰래 집안에 들여놓고,
비오면 젖을까 봐 집안에 들여놓고,
맛있는 거 준다고 삼겹살 몇 점 내주고,
이쁘다고 너부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내가 질색팔색할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너부리가 느낄 감정'에 대해서 얘기했다.
밖에서 혼자 얼마나 춥겠니.
얼마나 배고팠겠어.
쟤도 맛있는 게 먹고 싶지, 맛 없는 거 먹고 싶겠니?
그 말들은 내게 너부리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렇게 십년이 된거다.
십 년이란 세월동안,
너부리를 통해 나에게 반려동물의 의미가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려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짖는 건.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싶어하는 특성이 있는 것 뿐이다.
집에 몰래 들어오는 건. 그냥 가족이랑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러는거다.
TV도 컴퓨터도 책도 볼 줄 모르는 그 세상엔 가족만이 의미가 있었던 것 뿐이다.
묶여있으면 돌아다닐 수 있는 2m 반경만이 내 세상인거고,
눈에 보이는 저 곳의 냄새를 맡고 싶어도 저 곳의 땅을 밟을 수 없는 거다.
가족과 함께 있는 것만이 유일한 바람이니,
가족이 집 앞에 앉아 나올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려보는데,
기다림의 끝엔 가족이 차를 타고 나가는 찰나 같은 순간밖에 없었을 거다.
낼 수 있는 소리라고는 '멍'밖에 없어 자신의 바람들을 전달할 수 없는 것 뿐이다.
그러니 출근하는 엄마 차를 따라 뛰어도 가보고,
위험하니 따라 오지말라는데도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내 뒷꽁무니를 줄기차게 쫓아다녀 혼나기도 했다.
반려동물이 바랐던 것은 단 한가지,
'나와 함께 있는 것'일 뿐이었다.
반려동물의 의미를 찾고나니,
그저 이름없이 풍산개라 풍산이로 불렀던
우리집 큰 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조용히 그 아이를 학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7년 만에 처음으로 산책을 시켰다.
사상충 약이 왜 필요한지 몰랐던 우리집 여자들은, 약 한번을 먹이지 않았다.
사상충에 걸려 기운없이 누워있는 게 단지 늙어서 그런 줄 알았다.
의사는 화장실 가는 것도 고됐을 거다. 피오줌이 나왔을 거다.
많이 고통스러웠을 거다.라고 얘기해 줬다.
그렇게 아팠을건데, "나 아파요." 많이 아파요. 하는 한 마디를 못해서.
그렇게 혼자 견뎌야 했던 풍산이.
병원에 입원시키면서 매일 같이 우리집 여자들이 한 번씩 돌아가며 면회를 가면서
미안하다고 우리가 많이 미안하다고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우리는 풍산이를 학대해온거다.
풍산이는 다행히 병원 치료를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주었다.
그러면서 시골은 자연히 병해충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환경임을 깨달았고,
우리는 늘 도시 사람처럼 케어해주지 못한 것에 죄책감에 시달려했다.
우리가 개와 가까워지니, 아빠와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너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개를 좋아했냐고.
집 안에 개는 들이는 게 아니라고. 개는 집이나 지키면 된다고.
털 날리고. 나는 기관지가 안 좋은데 어디다 들여놓냐고.
그러면서 풍산이가 늙었다는 이유로
다른 집에 먹으라고 줘버리자고, 새로운 사냥개를 들여놓자는 말에
우리집 자식들은 난리를 쳤다.
다시는 집에 개 데려오지마.
학대야. 이것도 학대야. 책임지지 못할거면 절대 데려오지마.
얘도 감정이 있는 애야!
잘 해주지도 않고, 밥 한 번도 안줬으면서 또 왜 데려와?
여기는 개를 기를 자격이 없어.
다른 개끼고 사는 사람처럼 아껴줄 것 아니면 데려오지마!
동생과 나는 아빠 엄마처럼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을거라는 마음이 강해졌다.
그리고 다시 반려동물에게 상처주지 않고,
우리도 도시 사람들처럼 충분한 지식과 좋은 사료로 애지중지 길러줄거라고 다짐했다.
본가에 갈 때마다,
나는 늘 아이들과 있어주려고 했고,
동생은 간식을 무분별하게 사들였다.
그걸보면서 혀차는 아빠를 무시하면서, 더 돌봐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결국 내 집이 아닌 부모님 집이기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제는 힘없는 아이도 아니고,
각 자의 자신의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는 성인이되었기에,
그리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기에,
독립하면서 각자 도움이 필요한 반려동물을 들였다.
동생은 집을 얻어 나가면서 너부리를 데려가고 싶어했지만,
이미 시골에서 유유자적 풀려다니며 혼자 산책을하고 돌아오는 아이라
도시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너부리를 닮은 폐렴걸린 유기견을 데려와 지극정성으로 치료하고 입양했다.
나 또한 집을 나가게 되었고, 파양묘 아쿠와 캣맘이 구조해 갈 곳 없는 마린이를 입양하게 되었다.
어쩌면, 동생과 나는
헤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과 아픔을 알면서도
이 아이들을 통해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육묘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픈 것도 아닌데, 고양이 엉덩이가 더러운 이유 (4) | 2020.12.20 |
---|---|
브이로그를 찍다 #고양이집사일기 (0) | 2020.08.26 |
고양이를 다른 곳에 보내라는 말 -3. 끝- #유기와 파양의 비참한 삶 (0) | 2020.08.02 |
고양이를 다른 곳에 보내라는 말 -1- #반려동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0) | 2020.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