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의 자식들을 돌봐주는 보모 유태인 로자 아줌마.
나이들어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 옆에서 홀로 남겨질 모모,
이 이야기는 모모의 이야기다.
소설을 읽으며 내내 먹먹하게 했던 것은 사랑이 고팠던 모모의 행동이었다.
모모는 남들은 당연하게 있는 엄마라는 존재를 알지 못했고, 모르기 때문에 상상하지도 못했다.
10살로 기록되어있지만 커보이는 아이는 학교에서 받아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새끼를 지키는 암사자를 상상 속에 그려내서 엄마 삼았고.
우산에 옷을 입혀 친구로 삼았다.
그런 모모에게 유일한 보모 마저도 세상에서 떠나 보내야할 때가 온 것이다.
모모가 백화점 앞에 서커스 모형들을 보면서 행복한 세계인 듯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 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왜 울고 있냐"며 사소한 관심을 주는 금발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가 혹시라도 자신을 데려가줄까 싶어 따라가 봤지만, 그 여자의 집에 자신의 또래 아이들 둘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 집앞 대문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다.
모모는 그 후에도 다시 한 번 그 여자를 따라간다.
여자의 직업이 성우인지라 일터에서 더빙하기 위해 계속 영화를 계속 재생하는 장면을 엿보게 된다.
스크린 안에서 살려달라며 소리치고, 총소리가 나고, 남자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가, 다시 거꾸로 돌리니 흘렸던 피가 들어가고, 다시 살아났다가, 또 다시 살려달라고 말하고, 총소리가 들리고, 그렇게 반복되는 영화를 보며 아이는 로자 아줌마를 떠올린다. 다시 거꾸로 돌아가 튼튼한 다리로 생기 있게 서 있었을 모습을, 처녀 시절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거다.
모모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쥐고 있는 것을 쥐고 태어나지 못한 것.
소외되고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것.
그냥 이 세상에 태어난 것 뿐인데, 그것은 누구의 탓일까.
사회를 마냥 탓할수도 없는 것이
이 다 큰 소년은, 그곳에도 한계가 있는 것을 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각자만의 자기 앞의 생이 있는 것이다.
가끔 타인과 비교하면서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상상해 볼 때가 있다.
때로는 괴리가 느껴지는 것이, 내 인생이 초라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이 굴지만, 사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개 없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어도, 늘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하는 것.
억울해도 어쩔 수 없는 것.
그저, 자기 앞에 주어진 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
원래 인생이 그런게 아닐까